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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부여 받은 인생의 주체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이제 와서 뒤늦게 후회하는 중 // 관심사 : 음악, 독서, 여행, 운동, 유튜브, 일본애니 // Since October, 2019
by RealEscape


[일상] 2019년 11월 23일 월요일 2019년도_일상

- 뭐 먹을지 모르겠으면 파견 근무 동안은 제육덮밥으로 끼니 해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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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을 보면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 똑같은 레시피대로 분명히 요리를 만들었는데도 누가 만들면 걸작이 되고, 누가 만들면 400g으로 전 인류 학살이 가능한 보톡스급 최강의 독성을 갖춘 요리가 된다.

김밥천국은 전국적으로 있는 체인 분식점이고, 메뉴도 거의 똑같다. 어딜가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체인점에 대한 기대는, 분점마다 근무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간과해버린 시점에서 무너지기 마련.

어떻게 똑같은 김밥천국의 같은 제육덮밥인데 서울/수도권이랑 파견지랑 이렇게 차이가 날 수가 있지하는 생각은 들긴 했지만, 결국 나의 미뢰는 워낙에 싼 입맛을 장착하여 관대하기 그지 없는지라 아슬아슬하게 내 위장으로의 입장허가를 내렸다.

김밥천국이니 이 정도 선전이라도 하는 것이다. 바로 옆의 개인 분식점은 더 처참하기 그지 없다. 볶음밥을 시켰더니 볶음밥 위에 계란을 얹고(여기까지는 괜찮다) 그 계란 위에 바로 MSG 가루를 대놓고 뿌려서 주는 게 아닌가. 보통 이런 건 안 보이도록 조리 과정 도중에 뿌리는 등 숨기지 않나.

이러한 저 세상 볶음밥을 이미 위장에 꾹꾹 눌러담고 온 다음인지라 뭐든 받아들이게끔 나의 위장이 환경에 급하게 적응한건가 싶기도 하고. 하여튼 사먹을 거리는 거의 없는 상황에서 나의 위장은 오늘도 제육덮밥을 그저 묵묵히 꾸역꾸역 받아들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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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오프 때에 본가로 올라가서 책을 좀 많이 갖고 왔다. 최근에 온라인 교보문고에서 지른 여러 권의 책들 중에서도 얇고 간단한 책들 위주로 파견 근무지에서 보기 위해.

그런데 요즘 따라 책을 저절로 더 찾게되는 이유 중 하나가, 나의 주된 타임킬링 수단이었던 유튜브가 상당히 지루해진 것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어느 정도 양산되는 컨텐츠의 성격이 다 비슷하다보니, 카페에서 들을 BGM 영상이나 유머모음 영상, 힐링을 위한 작은 동물들이 나오는 영상이 아니면 관심이 가질 않는다. 

이러한 와중에 새로운 자극을 찾기 위해서 대신 선택한 것이 독서. 유튜브가 지루해진 틈을 타서 책이라도 붙들고 있는 요즘, 활자들이 내 각막을 스치는 느낌이 학창시절과는 달리 의외로 기분이 썩 불쾌하지는 않다. 스스로도 글 읽는 샌님 기질이 있단 자각을 조금 가지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서 내 자신에 대한 재발견은 덤.


#. 

흔히들 나잇값을 못한다는 그런 표현을 쓴다. 나이대에 걸맞는 일반적인 수준의 상식/언행이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 이런 표현을 보통 많이 쓴다.

파견 근무지에 같이 파견 온 일년차 선생님들 중 한 분을 통해서 최근 들어 이런 나잇값이라는 것을 되새기는 중이다. 기본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타인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 갖춰야 할 예의라는 것이 있고,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아가 다르고 어가 다른 법이다. 그런데 자기 기분이나 상황이 어떻게든 우선시 되어버리는 것인지 대뇌피질의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윗년차나 교수님들에게도 막말을 내뱉기를 서슴치 않아서 분란 조장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충격적인 건, 그렇다고 이 당사자가 무슨 지체장애가 있는 거는 아니고 오히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월반을 하고 서울대 약대도 수석 졸업한 두뇌의 소유자라는 것. 또래집단을 통한 사회성 함양 부족으로 말미암은 인격 미성숙의 탓인지 수많은 레전설을 양산해냈고, 자신이 본래 다니던 의전원의 모교병원 내과 지원도 밑바닥 평판 탓에 막혀버려서 지금 내가 있는 병원의 내과로 온 것.

최근 모종의 일이 있어 삼년차 선생님이 일년차 선생님의 어머님에게 유선으로 연락을 할 일이 있었는데(무슨 학부형한테 전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선생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 그 자식에 그 부모님도 말투나 분위기가 완전 판박이었다는 것. 

머리는 타고 났어도(솔직히 타고 났다고 해도 그렇게 썩 기대만큼 좋은 것도 아니고), 환경이나 그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는 인간 출생의 근본적인 한계로 인한 비극적 케이스로 생각이 들 뿐. 업무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접촉만 하고 그 이외에는 철저하게 벽을 치는 수 밖에.

덧글

  • 2019/11/23 11:2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11/26 14:5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9/11/26 00:1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RealEscape 2019/11/26 14:54 #

    저도 사람이 아예 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머리에 번개를 맞는 수준의 그런 계기나 강력한 동기부여가 없으면 현 상태 유지에 급급한게 사람 본능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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